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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영혼과의 대화
 
 
작성일 : 14-05-26 16:17
장희빈墓과 청와대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4,018  


장희빈墓과 청와대


2007년 당시 "장희빈 묘" 답사 이후 생각지도 않게

대선을 몇달 앞두고 장희빈과 이 나라에 대한 운명을

예언글로 남겼으며 그후 몇년간 상담 및 방송활동을 중지했다.

일부 정치인들은 매스컴으로 통해 알려진 영능력자의 국운과

관련된 예언을 상당히 두려워 한다라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숨겨둔 진실이 드러나면

어떻하던 자신들의 두려운 진실을 막으려 한다.

민간인 사찰이라니 한숨만 나온다.

그들은 대체 그 자리가 그렇게 탐나고 좋은지.....

그 자리가 어떤지 너무 궁굼해서 앉아보고 싶을 정도다.

이번에도 대선 앞두고 또 홈페이지 들락 날락 할 것이다.

도대체 장희빈 묘와 어느 당이 연관성이 있는지 ?

아직도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그건 장희빈이 역사속 인물이나 정치성 인물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또한 장희빈 역시 자신의 한을 본인의 예언으로 인해

풀려는 의도 또한 있다.

그러나 본인은 장희빈의 한을 결코 풀어줄 생각은 없다.

단지 답사후 보고 느낀 의견을 쓸뿐이다.

그렇게 "소리없는 전쟁"은 5년이 흘렀다.

도둑이 지발 저린다고 일부 정치인들과 당원들이

지나치게 흥분을 하니 참고로 다시 한번

"장희빈묘"에 대해서 말하지만

한마디로 거지가 길거리에서 죽어도 그렇게 해놓진 않을 것이다.

장옥정이 악녀? 라는 사실 확인안 된 소문 때문에

氣운을 누른다고 음지에 묻어 두었더니 이것 또한 문제로다 ~

그렇다고 양지 바른 곳에 묻자니 이것 또한 문제로다 ~

어차피 역사속의 악녀로 기록되어있는 장희빈의 한이

나라에 악 영향을 미칠까봐서 묘를 함부로 손대지 못하질 않는가 ?

본인이 귀로 들은 장희빈 영혼의 곡소리가 분명하다면

본인이 눈으로 본 장희빈 영혼의 모습이 맞다면

장희빈 영혼이 본인에게 말한 말들이 사실이라면

분명 나라가 안정되고 모든게 해결되며 뜻을 이루리라 본다.


아래 글은 2007년 4월 12일에 기록했던 내용이다.


제목 : 장희빈묘와 청와대

글쓴이 | 장 윤 정 날짜 | 2007-04-12 조회수 | 4203


【장희빈묘와청와대】


장희빈"대빈묘"와 인현왕후 능에 대한 자료 사진은
홈페이지 하단에 사진을 클릭하시면 자세히 보실수 있습니다.
선몽에 장희빈 묘를 다녀오라는 계시를 몇차례 받았으나
시간이 여유치않아 차일 미루다가 결국 2007년 3월 8일 일요일
서오릉 안에 장희빈"대빈묘"와 숙종과 인현왕후능을 답사했습니다.
그로인해 나라와 연관된 사연을 지금부터 공개합니다.
"장희빈의 억쎈 기가 바위를 뚫었다.?"
우선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영혼탐사단"과
직접 사실 여부에 나섰다.
서오릉 안에 들어서자 마자 귀를 의심하 듯...
젊은 여인의 가녀리고 구슬픈 곡소리가 공중에서 울려퍼지 듯 들렸다.
이게 무슨 징조란 말인가 ?
설마 백여년이란 세월이 흘렀거늘 아직도 장의빈의 한많은 영혼이
이승에 남아 떠도는 것이 아닌가 ?
애석하게도 인간의 한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음을 확인했다.
서오릉은 일산시 용두동이란 지역에 왕과 왕비들의 능이 묻혀있는 곳이다.
이 지역의 특징은?
용의 머리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 의미때문인지 이곳 지역에 왕과 왕비의 능을 쓴 것으로 보여진다.
갑자기 눈 길이 멈춘건 바로 이런 문구의 명칭이였다.
왕과 왕비들의 묘에 붙여진 이름은 "능"이었다.
그러나 유독 장희빈 묘에 붙여진 이름은 "墓" 였던 것이다.
이는 장희빈의 출신을 뜻함을 볼수 있었다.
장희빈은 왕족 출신이 아니였으며 사약을 받고 퇴출 당했으나
숙종의 자식"경종"의 어머니였기에 그나마 "대빈묘"라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웅장하고 멋스러운 능들은 외면하고 숨바쁘게 지나치는 순간...
마치 양반집의 묘지를 보는 듯한 작은 묘 하나가 눈에 번득 들어왔다.
"참 초라하구나~~~"
음기가 서린 공간에 사람들이 충분히 외면하고 지나칠만한 자리에
장의빈 묘가 다른 능들을 등지고 쓸쓸히 혼자서 뚝 떨어져 있었다.
아직도 장희빈의 영혼이 살아있는 듯 묘 주변에 기운은 굉장히
차갑고 습했으며 장희빈의 묘에서는 강한 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장희빈의 한이 서린 기운인가?
어둡고 습한 땅의 기운인가?
안그래도 한많은 여인인데 그것도 모잘라서 이런 음 氣가 강하고
수맥이 많은 터에 묘를 쓴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원인을 알려드립니다.



1. 첫째)
소문의 진상대로 장희빈의 강한 기가 바위를 뚫고 나무가 자란 것인가?
우선 장희빈 묘 정 중앙위에 놓여있는 바위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역시 소문은 소문에 불과하다라는 결론이다.
장희빈 묘 위에 커다란 바위의 정체는 다름아닌 기존에있던
바위돌로 바위를 가르고 나무가 자란것이 아닌 두개의 바위돌
사이에 자란 나무가 멀리서 보면 하나의 바위돌로 보였던 것이다.
결론은 장희빈의 기氣가 바위를 뚫고 나무가 자란 것이 아니였다.


2. 둘째)
장희빈 묘위에 커다란 바위는 무엇인가?
1969년 경기도 광주에 있던 묘를 일산 용두동으로 옮긴 것이다.
당시 묘이장 관계자들은“장희빈의 억쎈 기를 누르기 위해
일부러 바위 아래에 묘를 썼다”라고 밝혔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분명 왕과 왕비의 능을 옮길 정도라면 국가에서는 굉장한
실력과 학력을 지닌 풍수지리학자들과 신중히 논의하고
청와대 방위와 비교해서 능과 묘자리를 선택하였을꺼란 본인의 생각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건...
학자들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몰랐다라는 것이다.
사람의 육안과 심리로 보면 커다란 바위가 묘 위에
올려져 있으면 영혼의 기를 누룰꺼란 생각이다.
그러나 인간의 생각은 단지 생각으로 끝이 난다.
이론적인 학문과 풍수가 결국 더 위태롭게 했다라는 것을 아십니까 ?
만약 당신의 조상묘라면 엄청난 수맥이 흐르는 자리에 그것도
물줄기가 정 중앙 + 십자로 흐르는 자리에 묘를 쓰겠는지요 ?
안그래도 한많은 여인을 그것도 모 잘라서 시신 머리위에
바위를 올려 놓고 물과 돌로 가득한 자리란 걸 알면서도
일부로 凶터에 묘를 쓴 것인지요 ?
장희빈 묘 언덕 위 야산은 온통 바위와 돌들로 널리워져 있고
이른바 돌 산을 보는 듯했으며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태풍이 불 경우
묘 아래로 흙과 돌이 흘러내려 묘가 붕괴될 위험성이 있다.
그러나 당시 관계자들은 이러한 악 조건의 터란걸 알면서도
"장희빈의 惡한 氣운을 누룬다"하여 바위를 중심으로 묘를 쓴 듯했다.



【수맥이 흐르는 장희빈"대빈묘"】



수맥탐지기와 방위표를 가지고 장희빈 묘와 주변을 탐지해 보았다.
놀랍게도 엄청난 수맥 반응이 보였으며 터에서는 굉장한 기가 나왔다.
돌바위를 중심으로 묘 정중앙에서 시신 머리위 북쪽에서 시신발
아래인 남쪽방향으로 수맥이 흐르고 있으며 가로방향 동쪽에서
서쪽으로 수맥이 흐르고 있었고 남쪽에서 북쪽으로 수맥이 흐른다.
거기다 장희빈이 누운 자리에서 볼때 반대편 왕능들을 전부
등지고 있으며 시선은 숙종과 인형왕후의 능을 정면으로
바라보질 못하도록 향하고 있었다.
중요한건 해가 빨리지는 "음지" 라는 것이다.
이런 터에 묘를 쓰면 재앙이 생기고 터에서 나오는
흉한 악기운 때문에 오히려 영혼의 기운을 더 강하게 만든다.
그럴바에는 아예 처음부터 이장을 하질 말고 그대로 두거나
아니면 깨끗하게 화장을 하는 편이 더 낳지 않았을까 ?
어찌 역사는 한많은 여인을 가지고 두번 죽이려 하는가 ?
너무 아쉬웠던 점은 묘 방위만이라도 제대로 했다면
불운을 피할수 있었다.




【왜? 장희빈을 神으로 섬기질 않는 것일까?】



장희빈"장옥정"은 독한 악녀로 알려졌으며
중요한 건 인생 말로가 비참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 누구도 장희빈을 꺼려한다.
인간들은 부와 명예가있는 굵고 짧은 인생보다는
가늘고 긴 인생을 선택한다.
결국 죽음을 두려워 한다라는 것이다.
장희빈"장옥정"의 능력 정도라면 부와 명예 정도는
인간에게 충분히 줄수 있는 영혼이다.
인간의 운명은 그 영혼의 삶 그대로 흘러간다.
그러나 지나친 권력과 재물 욕심만 버린다면
인간이 바라는 부귀 영화는 영원히 지속된다.



【장희빈은 악녀인가?】



역사속 "조선숙종실록"에 실려있는 장희빈"장옥정"의 대한
기록은 거짓이 없을 것이다.
취선당에 신당을 차리고 무당을 불러들여 인현왕후를
저주하다가 숙빈 최씨의 고자질로 사약을 받고 죽을 당시
저주를 퍼붓고 악담을 하고 죽었다라고 전한다.
이러한 점으로 볼때 과히 선한 성격은 아니라는 점이다.
장희빈→남인계 , 숙빈최씨→서인계이다.
인현왕후"1667~1701" 운명하자 숙빈 최씨는 남인계를
몰락시키기 위해 장희빈"?~1701"을 죽이고 서인계가 정권을 잡았다.
어찌보면 역사속 궁녀들은 미인계 일부분인 정치 희생양이라 볼수있다.
조선실록에 보면 희빈 장씨는 "외모가 수려하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꼭 정치가 목적이 아니더라도 여자라면 누구나 한 남자로 부터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은 질투심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악녀로 취급 받는다면 이는 사람들의 잘못된 선 입견이다.
단지 드라마나 영화에서 만들어진 케릭터의 강한 이미지
영향력이 결국 역사속의 인물 장희빈"장옥정"을 악녀로 만든 것이다.
궁녀 신분에서 왕비자리까지 올랐던 "장옥정(장희빈)"
그러나 장희빈"장옥정"을 보면 항시 아쉬운 점이 있었다.
"모든지 욕심이 과하면 물거품이 된다" 라는 것이다.
본인이 느낀 장희빈"장옥정"은 이러했다.
한때는 왕비였으니 그 자태만큼 겸손하고 예의가 바르며
말수가 적고 다소곳하며 여성스러웠다.
항시 깨끗한 무명 한복을 입고 머리는 단정하게 묶고
색이없는 은색비녀를 꼿았다.
장희빈은 죽을때 이런 모습으로 죽은건 아닐까?
인간의 항시 죽었을때의 마지막 모습을 간직하기 때문이다.
성격은 오기가있고 한가지 일을 성사 시키거나 자신의 마음에
들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성격이다.
외소하고 작은 체격에 얼굴은 작고 피부가 희며 참신한 외모이다.
단점이라면 겉으로는 내색을 전혀 안하나 뒤로 내색하는 경향이있다.
그러한 성격이 결국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다.



【숙종은 장희빈을 사랑했다?】



장희빈"장옥정"의 묘 앞에 놓여진 비석에서 물령화를 발견했다.
마치 남녀가 끌어안고 있는 형상이다.
남자는 머리에 커다란 사각모자 형태가 보여진다.
당시 숙종은 후궁중 장희빈을 사랑했다.
주변 사신들의 고초에 어쩔수 없는 상항에서
장희빈"장옥정"을 죽인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숙종과 인형왕후능】



장희빈"장옥정"의 답사가 끝난 후
정 반대방향인 숙종과 인형왕후가 합장되어있는 능으로 향했다.
35세의 젊은 나이로 운명한 인현왕후!!
아이를 간절히 원했던 인현왕후의 슬픈 마음일까 ?
유독 숙종과 인현왕후의 능은 어린 아이들의 놀이동산을 보는 듯했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악한 사람은 없다.
왕능에서 뛰어 노는 수많은 아이들을 보면서 느낀점은...
역시 인현왕후는 국모의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여인이었다.
장희빈 묘와는 달리 웅장하고 화려했으며 양지가 바르고
능 입구부터 수맥이라고는 전혀 찿아 볼수없는 명당터였다.
좋은 기운이 강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능에서 숙종과 인현왕후의 영혼은 전혀 느낄수 없었다.
숙종과 인현왕후의 영혼은 이미 오랜 세월속에 이승의 미련을
접고 승천한지 오래였다.
그러나 장희빈 묘와 인형왕후 능을 풍수지형으로 볼때
서민 출신의 장희빈 묘와 왕족출신의 숙종과 인현왕후 능은
북쪽방위는 터가 쎈만큼 흉기가 나오니 영혼의 기운이 강해지고
동쪽방위는 터에 강한 기가 나오니 북쪽 땅의 기를 뺏앗아
기운이 강해진다. 그리되면 훗날 서민들은 굶주리고 상류층만
살아 남는 나라로 변하도다.
즉 중류층이 없어지고 상류층과 하류층이 격을 이루는 시대가 온다.



【장희빈인생과 대통령의말로】



우리나라에 풍수지리 학자들은 수를 셀수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무엇이 두렵고 무서운지 그 누구하나 수백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장희빈의 묘 터에 대해서는 언급하질 않는다.
본인은 학자들이 신중히 논의하고 결정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뭔가 미흡한 점이 보였다.
이론과 학문적인 풍수지리로 봐도 장희빈의 묘 터는 凶터이다.
일반 사람들도 조상묘만 잘못써도 자손이 풍지박살 나거늘
이런 터에 장희빈 묘를 이장후 과연 나라가 평탄했을까 ?
묘 이장 당시 대통령은 누구인가?
도대체 대한민국 대통령들은 말로가 왜 않좋을까 ?
혹시 장희빈의 한이 청와대에 영향력을 미치는건 아닐까 ?
요즘 나라가 어려우니 국민들의 한탄과 한숨 소리만 들린다.
그래서 역대 대통령들의 인생말로와 장희빈의 인생 말로를
비교해보았다. 우연의 일치일까?
장희빈의 묘는 1969년 경기도 광주에서 일산 용두동으로 옮겨졌다.
1969년 당시 대통령은 故 박정희 전대통령1963~1979 시대였던 것이다.
이때부터 대통령들의 말로는 지금까지 비극으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장희빈"장옥정"말고도 궁에서 사약먹고 억울하게 죽어나간 이들은 많다.
그러나 그들의 시신이나 묘는 양지가 바른 곳에 묻혀 있거나
오랜 세월이 흘러 흔적 조차 찿을수 없다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는 왜 ? 유독 장희빈만 가지고 악 기운을 누루기 위해
바위 돌 아래에 묻었을까? 그 이유가 의구심이 생겼다.
그건 장희빈"장옥정" 한때는 조선의 국모였고 나라와 연관된
인물이며 그의 영혼이 나라에 해를 끼친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허나 장희빈"장옥정"의 묘 이장후 역대 대통령들이 평탄치 못했다.
이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의견이다.


【대한민국지형과 맞는 대통령】



몇몇 무속인과 학자들은 엉뚱한 청와대 터만 가지고 말한다.
"북악산의 양기 원인이다.~"
"청와대를 옮겨라~"
"대통령은 여자가 되어야한다" 라는 말들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아직까지는 남성 우월사상이 깊으므로
사실상 딸 보다는 아들을 더 선호하는 추세이다.
대한민국의 전체적인 풍수지형을 보면 호랑이의 형태로
그 위세가 당당하고 강하니 우렁찬 목소리와 힘을 가진
인재(나라의큰인물)가 대통령이 되어야지만
흐트러진 정권을 잡을수 있으며 그나마 안정된다.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최초 여자 대통령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인물일 것이다.
하늘이 이미 정한 왕의 운명은 태어날때부터
정해져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막거나 피하진 못한다라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는 인재가 보이질 않는다



【장희빈의 한은 무엇인가?】



장희빈 "장옥정"이 말하길~
자신은 아직도 ○○ 라 말한다.
그 어떤 것도 바라질 않고 단지 ○○의 ○○만 돌려 달라한다.
그리하면 이승의 모든 한을 풀고 승천하리라 말하였다.




【알려드립니다】



간혹 타 영능력자 분들중에 본인의 글을 고대로 퍼다가
마치 자신이 경험한 사례 내용처럼 앞,뒤,중간 문장만 바꿔
글을 기재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여러분들 중에 타 사이트에서 본인의 글 내용과 흡사하거나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문장인데? 라고 의심이 나시면
그런 분들한테는 따끔하게 충고를 해주시길 바랍니다.
타인의 글을 도용하여 자신이 경험한 것처럼 위장한 분들은
영적 지식과 경험이 전혀없는 영능력자입니다.
하오니 각별히 주의 하시길 바랍니다.